강화에서 가장 큰 모래톱을 자랑하는 동막해변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갯벌 체험을 하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사장 뒤로 수백 년 묵은 노송들이 늘어서 있으며, 썰물 시에는 각종 조개를 비롯하여 칠게, 가무락, 갯지렁이 등 다양한 바다 생물을 볼 수 있습니다. 동막해수욕장 옆에는 분오리돈대가 있는데, 해질녘 이 돈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특별한 동력장치 없이 특수 제작된 카트를 타고 땅의 경사와 중력만을 이용해 트랙을 내려오는 다이나믹한 체험 레포츠 시설로 방향 조정과 제동이 가능하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무동력 바퀴 썰매입니다. 트랙 경사도는 완만하지만 곡선 코스가 반복되는 트랙으로 이내 속도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으며 보호구만 착용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레저 스포츠입니다.
학습, 탐험, 놀이가 집합된 체험형 테마파크로 2천여평의 실내 전시공간과 1만 6천여평의 실외 전시공간을 갖춘 과학 체험공간으로 어린이들의 현장체험 학습공간 뿐만 아니라 가족 관람객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공간입니다. 주요시설로는 500여 점의 실제 우주 전시물과 3D 영상관, 우주 체험과 야외 테마공원, 40여 마리의 움직이는 공룡의 숲, 사계절 썰매장(눈썰매), 물놀이장 등이 있습니다.
강화도의 핫플레이스 조양방직은 1933년 일제 치하에서 민족 자본으로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 의 방직공장입니다. 종업원이 4천여명에 이르는 거대한 공장이었지만 1958년 폐업한 뒤 60년 동안 버려졌다가 카페로 꾸며졌습니다. 대부분의 시설을 그대로 남겨둔 채 필요한 시설물들만 다시 보완하여 어르신들은 옛 추억을 떠올리고 젊은 세대는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업시간 : 매일 11:00 ~ 21:00
마리산, 마루산, 두악산이라도고 하며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469.4 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과 영종도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산정에는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이 있습니다. 산세가 아기자기하고 주변에 문화 유적지가 많아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 고 있으며 1977년 3월 산 일대가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었습니다.
강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석양 포인트로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는 관광지입니다. 바다와 갯벌을 배경으로 붉게 타오르는 듯한 강렬한 일몰이 장관을 이루는 낙조 명소로 서해의 대표 출사 여행지입니다. 태양이 사라진 후 남은 여명도 분위기가 있으며 이 부근은 저어새가 번식하는 장소이자 철새들의 이동 경로 중 하나로 탐조대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가 마니산 정수사를 중수하고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해서 그의 당호인 함허를 따서 함허동천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마니산 서쪽 기슭에 펼쳐져 있으며 빼어난 산세를 끼고 곳곳에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 바위들을 넘나들며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특히 계곡 한 켠에 200m에 달하는 암반이 넓게 펼쳐져 있어 마니산의 절경으로 꼽시고 있습니다. 계곡 아래에 한국 최고의 함허동천 야영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단군 왕검의 세 왕자가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사적 130호) 내에 위치한 전등사는 창건 연대 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왕실의 원찰로서 진종사라 불리어 왔습니다. 보물 제 178호 대웅전, 보 물179호인 약사전을 비롯한 10동의 건물과, 보물393호인 범종, 유형문화재 26호인 순무천총 양헌수승전비, 지방 문화재 7호인 대조루와 실록과 왕실세보를 보관했던 장사각지와 선원보 각지, 전설이 서려있는 나녀상, 열리지 않는 은행나무, 우는나무 등 많은 고목이 있습니다.
인천광역시 남구의 경우 학익동에 7~8기, 주안동에 2기, 문학동에 1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어 있으나 현재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학익동 고인돌 2기, 문학동 고인돌 1기 뿐입니다. 현재 인천광역시 남구에 남아있는 고인돌은 북방식이거나 혹은 북방식 으로 추청되며 과거 자료를 통해 볼 때 학익동 고인돌에 속해 있는 고인돌들은 적어도 북방식 이 우세했던 것으로 추론됩니다.